은유적으로 드러내다 - le sixieme, 구만재
취재 차 들른 르씨지엠의 사무실을 둘러보다 그의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비롯해 백색의 도자기 병,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가위 등 관계를 알 수 없는 사무용품이 넓다란 책상 위에 깍듯이 선을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이는 구만재 대표가 영감을 받았던 것이거나 관심 있는 것들로 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초기의 언어이기도 하다. 책상은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새로이 배열된다. 오늘 만난 구만재 대표는 어떤 사람인지 책상을 바라보며 잠시 추측해본다.
Q. 그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셨다. 작품활동을 하는데 있어 철학이 있나?
A. 철학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조심스럽다. 어릴때는 명확한 철학과 사상 아래 뭔가가 이뤄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내게 감명을 주었던 어떤 사람에 의해서, 음악을 듣다가 혹은 아주 괜찮은 공간을 마주하고. 명확한 컨셉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진 않지만 내가 가져가고 싶은 약간의 그림은 있다. 그 그림을 생각이라는 말보다는 ‘아이디어’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아이디어.
Q. 사무실 책장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다. 주로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나?
A. 지금 앉아있는 테이블 옆의 책장에는 공간과 관련돼 있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대개 기존의 유명한 건축가가 쓴 책이거나 구하기 어려운 건축 서적 혹은 유명한 작품집이다. 이와 달리 내 책상을 둘러싼 책장에는 얼핏 보기에 건축과 전혀 상관없는 소설책과 철학, 인문학 관련 책 등이 놓여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공간과 관련된 서적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은 건축적으로 조금 레이어가 쌓이다보니 생각치 못한 물건이나 서적들이 내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다준다.
Q. 그렇게 얻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건축에 결합되는가?
A. 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분이 말하길, 우리 머릿속에 동떨어진 개념을 연결해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물과 돌이 있다고 치자. 이 두 개념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지 골몰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사람들에게 전달 가능한 언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좋은 사고 방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Q.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사고의 힘이 아닌 것 같다.
A. 뜬금없는 물과 돌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물에 관련된 직접적인 언어를 계속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전혀 관계없는 언어나 어떤 것들을 자꾸 내 속에 쌓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예전에는 열심히 도면을 보고, 이미지를 찾고, 스케치를 하는 것이 좋은 디자이너의 덕목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디자이너는 열심히 놀고, 이것저것 엉뚱한 생각도 해보며, 많이 보고,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쌓인 레이어가 사고의 영역을 넓혀줘 좀 더 수월하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줄 것이다.
Q. 사고 과정을 거치더라도 사람마다 쌓인 레이어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이 나올 것이다. 구만재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가치있는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
A.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디자인의 사회적 개념을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은 원래 사회주의적 생각이다. 작은 재료, 적은 자본을 활용해 부유층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만들어주고 채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디자인의 개념에 적극 동의하는 입장으로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것이 디자인의 첫 번째 의미라고 생각한다.
Q. 추구하는 디자인이 있나?
A. 모더니즘이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배웠던 19세기~20세기 초에 나타난 모더니즘이 아닌 현재의 언어로 채워진 것을 의미한다. 유행을 좇는 것도, 굳이 옛날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도 아닌 지금 이 시대에 흐르고 있는 어떤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한 “Less Is More”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해서 Less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적게 하자, 심플하게 하자. 나는 More를 찾는 일에 더 고민한다, 덜어내고 무엇을 더 채울 것인지. 심플하다고 하면 대부분은 삭막하거나 미니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심플한데 노블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미 답을 알려주는 공간이 아닌 처음엔 심심해 보이지만 오래 머물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좋은 디자인의 조건 중에 하나가 은유를 뜻하는 메타포(Metaphor)다.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 히치하이킹하는 여자들이 다리만 살짝 드러내놓고 있다. 모두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유적인 공간은 더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다.
Q. 평상시에도 Less Is More를 추구하나?
A. 그렇다. 나는 심플하게 살고 싶고, 모더니스트(Modernist)로 살아가길 원한다. 심플하지만 풍요로운 것을 찾아내며 오늘을 살고 싶다.
고민주 기자
차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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